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플래툰(Platoon, 1986)은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가장 현실적인 전쟁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미국과 베트남, 두 나라의 시각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종종 간과된다. 미국에서는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반전 영화로 여겨지지만, 베트남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플래툰이 묘사한 베트남전은 미국과 베트남의 역사적 인식 차이를 어떻게 보여주는지 살펴보자.
미국의 시각: 전쟁의 참혹함과 도덕적 혼란
플래툰은 미국에서 반전 영화로 널리 인식된다. 주인공 크리스 테일러(찰리 쉰 분)는 전쟁의 영웅이 아니라 점점 타락해가는 군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비인간적인 폭력과 도덕적 혼란을 강조한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을 ‘실패한 전쟁’ 혹은 ‘잊고 싶은 전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특히 1980년대에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전후 사회에서의 부적응 문제가 대두되면서, 플래툰 같은 영화가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이 영화는 ‘적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미국 병사들조차 서로를 믿지 못하고 내부 갈등에 휘말리는 모습을 그린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실제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제작했으며, 그만큼 현실감이 뛰어나다. 미국 관객들은 플래툰을 보면서 베트남전의 끔찍한 실상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고, ‘전쟁의 영웅’이 아니라 ‘전쟁의 희생자’로서 군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베트남의 시각: 침략자의 전쟁과 민족 해방
반면, 베트남에서는 플래툰을 어떻게 바라볼까? 베트남전은 베트남인들에게 ‘미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민족 해방 전쟁’이었다. 베트남에서는 미국이 남베트남을 지원하며 전쟁에 개입한 것을 ‘침략’으로 보고 있으며, 그에 맞서 싸운 북베트남군과 베트콩(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저항을 정당한 투쟁으로 해석한다.
플래툰에서 베트남인들은 대부분 배경으로만 등장하고, 그들의 시각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베트콩은 미국 군인들이 공포에 떠는 존재로 그려지며, 때때로 잔인한 적군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이들이 ‘민족 해방을 위해 싸운 용사들’로 평가된다.
또한, 영화가 미국 병사들의 고통과 내적 갈등을 부각하는 데 집중하는 반면, 베트남인들이 겪은 희생과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진다. 베트남에서는 이런 묘사가 일방적이며, 미국 중심적인 시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플래툰은 베트남에서 ‘반전 영화’가 아니라 ‘미국 병사들의 이야기’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전쟁의 해석 차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
전쟁을 다룰 때 중요한 점은 누가 피해자이며, 누가 가해자인가에 대한 해석이다. 플래툰은 미국 병사들이 전쟁으로 인해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피해자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베트남 입장에서는 미국 군인들은 침략자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주체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장면이 영화 속 미국 병사들이 한 마을을 습격해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미라이 학살 사건(1968년 미국 병사들이 베트남 민간인 수백 명을 학살한 사건)을 연상시키지만, 영화는 이를 미군 내의 갈등으로 묘사할 뿐, 미국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한 깊은 반성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것이 전적으로 반전적인 시각일까? 미국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병사들도 희생자’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미국 병사들이 전쟁의 고통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결국,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미국과 베트남의 역사적 경험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론: 플래툰, 두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플래툰은 미국에서 반전 영화로 평가받지만, 베트남에서는 미국 병사 중심의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전쟁을 다루는 영화가 반드시 모든 관점에서 공정할 수는 없으며, 특히 베트남전처럼 역사적 해석이 첨예하게 갈리는 경우,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전쟁이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인간성이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플래툰을 다시 보면서, 우리가 가진 역사적 관점이 얼마나 상대적인지 고민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